작년 3월 말 결혼식을 마치고 1주일후 결혼한 친구커플과 다녀온 허니문..
엘니도라는 섬에서의 6박 7일.

그리고 1년후.
아이도 생기고 나면 홀가분하게 둘만의 여행을 다녀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다녀온
피지에서의 추억.

3월 2일. 화요일 출발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수하물을 부치고 면세품을 찾고 육개장 한그릇을 비운 우리. 비행기에 올랐다.
10시간동안의 금연을 위해 니코틴도 꽉꽉 채웠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지 얼마되지 않아 나오는 저녁 기내식. 애매한 양의 밥과 등등이 나온다.
양껏 먹긴 했으나 꼼짝않고 앉아있던 탓에 소화가 되질 않는다.
이어서 스튜어디스가 허니문 케익까지 권했다. '피지애'의 서비스다.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하려 창측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디선가 곤지냄새가 난다.
(곤지냄새- 부모님이 키우시는 코카스파니엘로 보름정도 안 씻으면 나는 냄새)
신랑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인천공항까지 신나게 액셀을 밟고 달려온 발냄새가 더욱 심하다.

3월 3일. 10시간을 정자세로 앉아 꼼짝않고 비행기에 갇혀 있다 내린 피지.
뜨뜨미지근한 바람과 검정스킨의 피지안들이 반긴다.

칠레의 지진과 그 여파로 인한 해외여행의 두려움을 조금 씻어주는 듯 하다.
120의 거구가 검역을 하겠다며 가방을 뒤진다.
농심 사발면, 맛밤, 쥐포채, 프링글스는 넘어가고 천하장사를 지목했다.
총9개. 절대 안된다며 모두 꺼낸다. 신랑이 아깝다고 난리다.

이관행 가이드가 우리를 반기며 조개목걸이를 목에 걸어주고 피지의 특산물 코코넛비누를 선물한다.
가이드를 따라 보모섬으로 가는 헬리콥터가 운행하는 비행장으로 떠났다.

 

 

날씨에 대한 근심을 뒤로하고 헬리콥터를 타고 보모로 들어가는 상공.
파랑, 초록이 경계가 선명한 바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호와 듬성듬성 위치한 작은 섬들이
기이하기까지 하다.
멋진 수염의 헬기 기장이 가는 길목에 있는 섬들의 유래와 자연경관을 설명하나 들리지 않는다.
귀로 듣지 않아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보모아일랜드에어포트.라 쓰여진 아주 쪼끄만 착륙장에 몸을 내리니 지프가 우리를 실어간다.
리셉션이라 불리는 난간에 도착하니 머리를 한결같이 뽀글빠글 볶고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 검은 피부의 직원들이 반긴다.
이상한 맛이 여러개 섞인 트로피칼인지 하는 음료를 권해 입만대고 내려놓는다.
마사지는 언제 받을 것이냐, 로맨틱디너는 언제 먹을 것이냐, 무인도에는 언제 데려다줄까 등을 정하고.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으로 지친 우리를 룸넘버 11의 21도에 맞춰진 천장형 에어컨이 반긴다.

 

 

쇼파테이블에는 요상한 모양의 과일 세개와 별로 손안가는 와인한병, 여기저기 테이블이나 서랍장이라고
생긴 곳에는 여지없이 하얀 꽃들이 앉아 있다.
침대에는 빨간 꽃 한무더기와 술루 2장, 퓨어피지 제품 한세트가 놓여있고 모기장인지 케노피인지
하얀 망사를 풀기 어렵게 꼬아놨다.
침대에서 우회전을 하니 옷장안에는 금고와 옷걸이, 다리미, 모기약 등이 놓여있고 그 옆 화장대에도
어김없이 꽃이 앉아있다.
욕실 안에는 서서 샤워하는 부스와 세면대가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 록시땅이라는 브랜드의 목욕용품과
비누와 손수건, 드라이기 등이 제자리에 있고  세탁바구니 등도 비치돼 나름 신경쓴 티가 난다.
샤워부스에서의 샤워는 밖으로 흐르는 물로 인해 걸레질을 조금 해야하고 두 사람이 들어가라고 설계된
자꾸지는 몸무게 90에 육박하는 신랑과 50중반에 이르는 나로 인해 조금 비좁다.
목욕거품을 가지고 갔는데 거품이 넘쳐서 청소도 좀 해야했다. 그러나 둘만의 느낌을 내기에는 썩 괜찮았다.
굳이 토코리끼의 풀빌라로 가지않고 보모로 간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2월 리모델링을 했다는 것이 어떤것인가는 비교대상이 없어 잘 모르겠다.

4시간의 시차때문인지 10시간의 정자세 때문인지 신랑은 쇼파에, 나는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눈뜨니 저녁시간.

유명한 쉐프들의 요리에 기대를 품고 찾은 식당. 영어는 필요없다.
'디스원, 디스원. 잇팅 투게더'
잘못 고른거 하나, 그럭저럭 잘 고른거 하나. 배를 채우는 정도.
한식에 길들여지고 외식을 잘 하지 않으며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생일에나 가는 이들에게는 조금 힘들다.
커피, 콜라, 아이스티 등등은 무료이나 그외 맥주들은 돈을 낸다. 자꾸 '비어?비어?' 권한다. '노우 알콜'

방으로 돌아와 사발면에 물을 채웠다. 국물도 남김없이 비웠다.
가져온 6개의 사발면을 일정에 따라 잘 나눠야 할 것 같다. 맥심커피도 한잔.

서울에서도 새벽녘이 되서야 잠을 청하는 우리가 8~9시 정도에 잠을 청해야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가져온 고스톱이 등장한다. 맞고로 시작된 저녁시간이 훌쩍 2시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리허니문 베이비를 위해 노력하고 나니 조금 피곤하다.
쿨쿨.

 

3월 4일. 늦잠 때문에 아침을 못먹었다. 또 사발면이다.
남은 사발면 갯수를 세보니 조금 긴장되지만 다행히 무인도 섬에서 도시락을 주니 기대된다.

 

스노쿨링 장비를 빌리러 갔다. 구명조끼와 수경은 그냥 집으면 되고 오리발은 직원이 찾아주는데
주는 것이 작으면 '타이트' 크면 '빅' 두 마디로 해결했다.
가져간 프링글스와 쥐포를 조금씩 던져주니 물고기들이 몰려든다.
모래사장과 가까운 곳이라 물고기들의 색이 모래와 비슷하다. 허여멀건 아이, 몸에 줄이 쳐진 아이.
쥐포를 담아온 비닐봉지를 그물삼아 신랑이 하얀 열대어 5마리를 잡았다. 손에 얹어놓으니 은빛이 눈부시다.
쥐포와 프링글스를 뭉개어 손에 잡고 있으니 고기들이 달려든다. 째끄만 이빨로 손을 톡톡 치며 음식을 채간다.

직원의 부름에 달려가 배를 타고 무인도 라이라이로 향했다. 아이스박스와 우리 둘을 던져놓고 떠난다.
박스를 열어보니 음식내용은 박스 크기의 10분의 1. 연어훈제, 고기종류별, 짠 소시지. 야채샐러드, 버섯볶음.
그외 요상한 과일 등. 콜라 두개, 물 한통.
손은 안가지만 무인도에서의 생존을 위해 먹었다. 이따 배고프니 먹어야 한다며 음식을 우겨넣는 신랑이 안쓰럽다.

 

 

이어지는 무인도 둘러보기. 아쿠아슈즈를 가져온 것을 꽤 다행스러워하며 무인도 앞 돌들을 밟았다.
어랏. 바로앞에서 상어가 지나간다. '잡아볼까?'라는 신랑의 한마디가 끝나고 상어가 기절했다.
신기해서 포즈잡고 사진까지 찍은 뒤 놓아주었다. 머리를 맞아 잠시 어리둥절하던 상어가 유유히 헤엄친다.
도시락에서 남은 음식을 모두 싸들고 물안으로 들어갔다. 굴, 소시지, 고기, 버섯, 연어 등을 들이대니 고기들이 미친다.
먹이를 달라고 상어가 다리를 자꾸 치는 통에 조금은 무서워 물밖으로 나왔다.
무인도에 있는 기이한 돌들과 요상한 은신처 등을 조금씩 둘러봤는데도 시간이 무척이나 남는다.
사진도 찍고 의자에도 누워보고 물에도 들어가 수영도 했지만 3시간은 길다.
물이 빠져 스노쿨링도 못하게 했기 때문에 무인도에는 오전에 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갈 사람 참조)
3시간이 지났는데도 배가 안온다. 이때부터 조금 걱정. 혹 보모에서 배가 움직일라 치면 손을 흔들어야 할 정도.
이제부터는 기다림이 돼버렸다. 보모를 바라보며.
3시간 50분이 되어서야 배가왔다. 이상한 드럼통과 통나무들을 잔뜩싣고. 그걸 다 내리고 나더니 그때서야 타란다.
그 무거운 짐들을 내리는 모습을 보니 항의할 마음이 사라졌다. 무사히 돌아온 것을 감사해야 할 듯 싶었다.

 

돌아오자 마자 시작된 저녁식사. 오늘은 매케의식이 있는 날이어서 원주민 복장을 하고 횃불을 든 직원들이
관광객들과 포토타임을 갖고 자기네들의 음악과 연주를 들려준다.
다행히 부페식이어서 먹어보고 괜찮으면 더 떠다 먹었다. 익힌 고기종류와 샐러드 등이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밤이 되자 낮 동안의 수영과 뙤약볕에서의 지나친 활동으로 인해 사발면, 맛밤에 쥐포까지 등장했다.
이어지는 고스톱에 별이 빛나는 밤이 지나고 있었다.

 

3월 5일. 아침에 눈뜨자 시작된 스콜인지 뭔지는 전날 널어놓은 수영복과 옷들을 다 적시고 있었다.
10시에 예정된 스노쿨링 투어도 취소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시 햇살이 쨍쨍하다.
인포에 물었다. '투데이 스노쿨링 투어 캔슬?' '노우'란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나가니 노령의 외국인 한 커플이 이미 나와있다.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로 간다.
뛰어들어 가다시피 들어간 깊은 바다에는 모래사장 앞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이한 모양의 고기, 상어, 갈치들이 지나가고
형형색색의 산호들이 앉아있다.
이것을 안했으면 어찌했을꼬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1시간여를 물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배위로 올라가기 싫다.
보모는 산호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 것이리라. 수중카메라로 여러장을 찍어봤으나 모두 실패인게 아쉽다.

 

 

점심 후 이어진 스노쿨링의 마지막. 끝나가는 보모에서의 시간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남은 프링글스와 쥐포를 모두 봉지에 넣고 식당에 가서 남은 빵을 얻어와 보모의 모든 물고기들을 불러모았다.
저질체력이라 불리는 신랑은 제발 뭍으로 나가자며 나를 달랬지만 추억의 마지막을 접고 싶지 않은 나는 들리지 않았다.
갈치, 열대어, 상어, 니모와 인사를 나누고 다음 타자들이 곧 와서 먹이를 줄 것이라는 약속도 했다.

방으로 돌아와 빨래를 하는 신랑과 샤워를 하는 나는 서로의 체력에 감탄과 야유를 보내며 이야기를 나눴다.
수영복 속에 감춰진 하얀 살과 밖으로 드러난 검은 살 사이에 선명한 라인을 보며 웃어대는 시간속에
보모에서의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마지막 밤을 로맨틱하게 보내라는 보모의 명령에 따라 바닷가에 차려진 식탁으로 안내됐다.
불빛 하나에 의지해 밥을 먹어야 하는 분위기가 영 익숙하지 않았지만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느리게 걷는 직원들의 걸음걸이와 하나 먹고 소화될쯤에야 나오는 다음 음식도 제법 익숙해졌다.
나오는 빵을 모두 먹고 '모어 브레드'를 두번 외쳐야 아까 주문한 잼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곤욕이 시작됐다. 음식이 나오고서부터, 어둠이 찾아오고부터 날아든 모기들.
초롱불에 의지한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모래사장에서 모기들과의 사투를 벌였다.
독한 모기는 식탁에 앉아 있는 우리의 얼굴, 다리, 목, 손을 공격했다. 방으로 달려가 모기약을 가져온 신랑.
로맨틱 디너에 알맞은 샤방샤방 드레스와 모시 남방을 입은 나와 신랑은 바람에 약이 날리지 않게
야자수 뒤로 가 약을 투하했다. 결국 디저트는 칵테일바로 가 쇼파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먹기에 이르렀다.

6개의 사발면이 동났다. 간식으로 부셔 먹으려던 스낵면이 뽀글이로 둔갑했다.
말로만 듣던 뽀글이. 눈앞에서 보게될 줄이야. 국물을 많이 먹으려 물을 많이 넣었더니 비닐 위로 물이 넘친다.

 

3월 6일. 보모를 떠난다. 옆집 가족과 대화를 나누던 신랑이 담배 한가치를 빌리는데 아저씨가 무려 '한갑'을 줬단다.
'역시 사람이 됐다'면서 아저씨에게 무지 고마워 한다.
아이와 함께 온 그 가족. 몇 년뒤의 내 모습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머리속에 새겨졌다.

미니바도 건드리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맥주도 먹지 않은 우리는 계산할 것이 없었다.
독한 것들. 보모에서 '아이스 워터' 어쩌고 하라는데 매일 방에 물이 두병씩 있다. 냉장고에 있는 3병의 물도 무료란다.
떠날 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모두 나와 기타를 치며 슬픈 노래를 부른다. 선그라스 사이로 눈물 세방울이 맺혔다. 이런..

헬기를 타고 난디로 떠난다. 보모로 들어올 때 보았던 상공에서의 섬들과 또다른 광경이 눈앞에 있다.
얼마 후면 사라질 기억이기에 모든 풍경을 사진과 내 두 눈에 다시한번 담았다.

난디에 도착하니 또다시 이관행 가이드가 우릴 맞는다.......................